"당신은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입니다"라고 J.D. 샐린저가 말한 적이 있다. 마찬가리로, 모든 배우는 배우이기 이전에 일단 관객이다. '극장'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극장에 자꾸 가고 싶어지는 이유는 왜일까? 관객 한 명 한 명의 폐부를 찔러 의자에 앉아 있게 만드는 그런 순간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배우는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나서 이 부족한 점들 중에서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즉 자신이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인물과 보다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의지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무대에 섰을 때 그는 만족스럽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무대에 나갈 준비를 갖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극이 무대에서 펼쳐질 때, 배우가 보다 자유롭게 극 속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배우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배우가 책임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규정한 후에 목록을 만들어 자신의 책임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 다시말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철저히 신경쓰지 않는다는 다소 엄격한 작업 철학을 갖고 있으면, 매 순간이 연기자로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 대본을 정확히 분석하는 능력, 몸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능력, 목소리 훈련같이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극이 전반적으로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연출가나 다른 배우들의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관객석에 어떤 비평가가 앉아 있는가, 자신의 키는 얼마이고, 지금 기분은 어떤가에 관심을 쏟는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실제로는 이것 중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신경을 쏟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시간과 생각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만 전념하는 것이 옳은 태도다.
배우는 '재능'에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설사 재능이 있다 해도, 그것은 배우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재능이 실제로 있거나 없거나 그것에 상관없이 재능에 대해 걱정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연기에 필요한 유일한 재능은 연기하는 재능뿐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데 전념할 수만 있으면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의지만 있다면 누구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고는 싶지만 재능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배우의 역할 중 또 중요한 것은 극이라는 상상 속의 상황속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는 대본 속의 상황을 단순하면서도 연기 가능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가 자신이 나오는 장면에 맞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한 연기의 성공이나 실패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자기가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에 더 주의를 쏟아야 한다.
마치 목수일처럼 연기도 정확한 테크닉과 도구가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테크닉과 도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의지력을 발휘해 결국 그 테크닉과 도구를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일단 그 테크닉이 몸에 익으면, 더 이상 테크닉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한번 몸에 익은 연기술은 배우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배우는 그 영역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된다.
배우가 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은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연기에는 상식, 용기, 그리고 엄청난 의지가 요구된다. 주어진 배역이 무엇이든 간에 단순하게 연기하려는 상식이 필요하다. 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의식, 그 밖에 수도 없이 많은 장애물이 있어서 극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 용기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이상적인 연기에 집착하는 의지가 요구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내부에도 배우가 갖고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우의 이 강철같은 의지란 어떤 "대단히 훌륭한 공연"을 보여 주려는 의지가 아니라 배우 자신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가치로서, 이것이 바로 배우로 하여금 연기하게 하는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