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
(킬킬대며 웃는다)
한잔 할래도 마실 술이 없네.
(사이)
나, 마지막 돈 탈탈 털어서 이거 하나 구했어.딱 한 놈만 죽일려구.
내 혼자 죽기엔 너무 너무 억울하니까 딱 한 놈만 내 저승길에 같이 동행하자.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놓은 놈들 중에 딱 한 놈.
(여전히 웃으며 두 눈은 핏발이 서고 웃을수록 고통과 자기 모멸의 감정은 더욱 드러난다.)
그런데 어떤놈을 죽일까?참 고민되더라고, 응? 딱 한 놈을 고르려니까 그게 어려운 거야.
피 같은 내 돈 다 날려버리고 깡통 차게 한 증권회사 직원 놈을 죽일까?
달러 빚 내주고 고리 뜯어낸 사채업자 그 흡혈귀 같은 그놈을 죽일까?
(얼굴은 웃고 있는데,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린다. 다시 쿨럭쿨럭 소리내어 웃는다.)
그런데 죽일 놈이 없더라고, 내 인생을 요 모양 여 꼴로 만든 죽일 놈들이 너무 많아서 한 놈을 못 고르겠더라고...(권총을 장전하고 광남에게 겨냥하며)
당신, 어느 놈이 보내서 왔는지 모르지만 오늘 날 잘못 택했어.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가져가 관자놀이에 댄다)
어떻게 할래? 구경하고 갈래?그냥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