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는 연지 찍고 분발라 본 적 있어? 치, 괜히 심술은. 그래도 나는 할머니가 처녀 적에 얼마나 분 바르고 싶어 했을지 다 알아! 울긴 내가 왜 울어? 이놈의 동네는 우리에게 죽도록 일만 시켜 먹구 우릴 본체만체하는데. 하루는 이삭 주으러 저 너머 김참봉네 밭에 갔다? 한참 줍고 고갤 넘어 오다가 그만 소나무 밑에서 잠이 들어 버렸던 모양이야. 잠결에 귀를 비비며 눈을 떠보니까 어휴 창피해! 산에서 나무해 가지고 내려오든 사내자식들이 우릴 둘러싸고서 우리 꼴을 보고 킥킥거리는 거야. 그때 어떻게 부끄러웠는지... 서울에선 설날이 아니어도 연지 찍고 분을 바른다지? 그리고 여자애들도 거리로 막 쏘다닐 수 있고. 아, 참 좋겠다! 아 몰라, 동네 여자애들은 전부 날 부러워 야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