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지금이다. 지금 마침 기도를 하고 있구나 ― 자 해치우자.(칼을 빼든다) 그러면 저자는 천당으로 가고, 나는 원수를 갚게 되지. 가만 있자, 이거 생각해 볼 문제구만. 악한이 내 아버지를 죽였는데, 그 보답으로 외아들인 내가 그 악한을 천당에 보내… 이건 도리어 왕을 왕생극락하게 해주는 일 아닌가, 복수이기는 커녕. 저자의 손에 걸려 아버지는 현세의 온갖 욕망을 젊어진 채 죄업이 오월의 꽃과 같이 한창인 때 느닷없이 살해당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승에서 어떠한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인지, 하느님 밖에 누가 알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중형을 면치는 못하렷다. 그런데 과연 이게 복수가 되겠는가, 저자가 영혼을 말갛게 씻어, 지금 천당의 길을 떠나기 꼭 알맞은 이때 죽이는 것이? 천만에. (칼을 다시 칼집에다 넣는다) 칼아, 네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렸다가 좀 더 살기 찬 기회를 알아차려라. 글쎄 만취하여 곤드라지고 있을 때나, 혹은 발광하고 있을 때, 상피 자리에서 쾌락을 탐하고 있을 때. 혹은 도박을 할 때, 폭언을 할 때, 기타 전혀 구원의 여지가 없는 나쁜 짓에 빠져 있을 때, 그런 때에 행동하자.
